013.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다른 삶을 체험하고 그걸 기사로 쓰는 걸로 알려진 남형도 기자의 책이다. 시선에서 소외된 삶을 알리고자 쓴 책이라고 한다. 취지도 좋지만 글을 재밌게 써서 술술 읽힌다. 읽다가 피식 웃게 되는 책이다. 

총 스무개의 체험이 소개되어 있다. 남기자가 직접 착용한 브래지어 체험, 노인 체험 장비를 몸에 장착하는 노인 체험, 시각 장애인 체험 등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경험담을 담았고 환경미화원 체험, 소방관 체험, 집배원 체험 등 직업 체험도 있었다. 거절당하기, 지인에게 사랑한다/고맙다 말하기 등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습관을 깨려는 시도도 들어 있다.

다양한 이야기 중 가장 좋았던 건 노인 체험. 노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인데도 너무 몰랐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좁은 길을 걷거나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느릿느릿 걷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 답답하고 얼른 앞질러갈 생각만 했을 뿐이다. 

짐작을 못한 건 아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 저자가 여의도 벚꽃축제를 가서 한나절 체험한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평소 다닐 땐 몰랐는데 길이 참 불친절했다. (...) 한 시간 뒤엔 몸이 통나무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건 체험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란 생각에 견뎠다. 

요즘엔 집안에서조차 시각장애인의 생활이 불편해졌다고 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스마트홈이라는 이름으로 터치스크린이 많아졌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에게 터치스크린은 그냥 어둠이다. 일상을 더 편리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디지털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질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집배원이나 소방관 체험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건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에 힘을 낸다는 것. 월급을 올려주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오늘 당장 누구나 줄 수 있는 도움은 관심이다. 감사합니다 한마디 하는 데는 돈도 안 든다.



Comments

  1. 브래지어 체험에서는 대체 어떤 발견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ㅎㅎㅎ 마지막 부분, 정말 공감! 요즘 저는 제일 자주 만나는 게 배달하시는 분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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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시간만 차고 있어도 숨이 막히고 소화가 안 된다는 공감.. 그리고 노브라로 다닐 때 주변의 시선을 체험하고자 진한 브래지어를 입고 딱 붙는 흰 셔츠를 입고 출근을 해봤대요. 책에 사진도 많아요 ㅋㅋ 아내가 동네 다닐 때만이라도 노브라로 다니고 싶다고 할 때 말렸던 걸 후회한다고. 그냥 누군가가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는 걸 알려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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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흰 셔츠 대박ㅎㅎㅎㅎㅎ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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