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알코올 중독

나는 알코올 중독일까? 

대학교 1학년 때 평생 마실 술을 다 마셨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는 데 이유가 없었고 수업이 끝나면 그 날 시간이 되는 친구들과 녹두거리를 찾았다. 새내기 모임 같이 인원이 많을 때는 '태백산맥', 맥주가 땡길 때는 '링고', 친구들과 단골로 다닌 곳은 '임꺽정'이다. '임꺽정'의 떡볶이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선배에게 고백한 곳도 '임꺽정'이었지 아마? 서울대입구의 '형, 어디 가'의 과일소주도 맛있었다. 2학년 때 남자친구와 둘이 거기 있는 과일 소주를 종류별로 다 마시고 (7가지) 그때부터는 내가 아닌 술이 술을 마셔 참이슬 세 병을 더 시켰다. 녹두거리에 '동생 같이가'도 있었는데 '형 어디 가'를 더 좋아했다.

2학년 때 술을 끊었다. 마실 만큼 마셨고 무엇보다 술 마시면 유방암 걸릴 확률이 몇 배 증가한다는 어디선가 본 기사에 충격을 받고 결심했던 것 같다. 나의 목표는 오래 사는 거였으니까. 그러다가 회사 다니면서 금주를 풀고 회식 때만 적당히 마시기 시작했는데 1학년 때 죽어라 마셨을 때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을 요즘 한다. 나 알코올 중독인가?

올해 3월 영국에 이동제한령(lockdown)이 내려져 식료품점, 약국, 병원을 제외한 상점이 모두 문닫고 하루 한 번 운동과 장보기만이 허락된 시기를 겪으면서 매일 와인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그 전에도 미국 본사와의 회의가 끝나는 저녁 7시가 되면 와인 한 잔을 마시며 고단한 하루를 달래곤 했는데 락다운으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줌(Zoom)으로 회의만 하루종일 하는 매트릭스 속 생활이 이어지자 정말 매일 마시기 시작했다. 5일 연속 마신 걸 깨달은 어느 날 너무 놀라서 그 뒤 이틀을 마시지 않았다. 

한 번에 와인 한 잔만 마시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면 그 정도로 중독 아니야! 라고들 반응하지만 중요한 건 양이 아닌 횟수가 아닐까. 요즘에도 힘든 회의가 끝나거나 유독 정신없이 일했던 하루가 끝나고 저녁에 한숨 돌리게 되면 와인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도 내 앞에 와인이 있다(오늘은 왠지 소주 잔에 마시고 싶어 소주 잔에 와인을 부었다).



Comments

  1. 잘은 몰라도 의존성 여부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싶어요. 저도 작년까지만해도 반주를 즐기고 퇴근 후 혼술을 곧잘 했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몇 주 전에 친구랑 공원에서 사케 한 병 나눠마신 것 빼고는 전혀 술을 안 마셨어요. 가끔 생각이 나기는 하지만 가뜩이나 안 움직이는데 예전처럼 술 마시면 감당할 수 없게 거대해질까봐 두려운 게 더 큰 커서 별로 안 땡기더라고요-_-

    소주잔에 와인 그거 괜찮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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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원에서 사케 한 병도 괜찮은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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