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연기 수업

연기 학원 성인 취미반을 다니고 있다. 몇 년 전 내가 진짜 내 모습을 숨긴 채 살아왔다는 걸 알고 충격 받은 후,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항상 내 기준에 '괜찮은 사람'인 척 살아왔다. 심지어 나도 속을 정도로.

30년 넘게 그렇게 살았으니 진짜 내 모습이 오히려 낯설었다. 꾹꾹 억눌린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문득 연기를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연기는 감정 표현을 해야 하는 거고, 표현을 하려면 감정을 이해해야 하니까 감정 고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이상윤이 대학교 때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처음 연기를 배워봤다는 말도 자극이 됐다. 춤도 노래도 망가지는 것도 모두 힘들어하는 이상윤이 '집사부일체'에서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응원했다.

코로나 2.5단계로 개강이 미뤄지고 9월 19일에 첫 수업을 했다.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 2주 차는 이론 수업, 세 번째 수업에 드디어 무언가를 하나 싶었는데 아이컨택트와 스토리텔링 게임을 했다. 물론 연기에 연결시킬 수 있는 기초 체력을 쌓는 연습이라 생각했지만 연기 수업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긴 어려웠다.

4주 차인 어제 드디어 도전이다 싶은 수업이었다. '망가지기' 게임. 여전히 연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왜 하는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분명하게 느낌이 왔다. 룰은 단순했다. 연습실에 흩어져 서서 한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하고 소리를 내며 다른 한 사람을 향해 간다. 그러면 그걸 받은 사람이 그 동작과 소리를 똑같이 재연하며 제3의 사람에게 가다가 중간 지점에서 새로운 동작과 소리를 만들어 한다. 무한반복. 동작과 소리에 제약은 없지만 최대한 우스꽝스럽고 요란하게 한다. 

취미반 10명 학생 중 이 날 7명이 출석했고 그 중 2명은 정규반을 듣는 '경력자'들이라 잘했다. 나머지 5명 중 가장 어려워한 건 나와 해군 장교가 목표라는 어떤 학생이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창피해 미치겠다는 티가 역력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동작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 정도로 티가 나진 않았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창피해도 다같이 하는 거니까 따라하겠는데 내 동작과 소리를 생각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렇게 1시간 정도 하고 나니 집에 가고 싶었다. 

중간 점검 시간에 선생님이 그 분과 저를 지목하며 정말 빠르게 내려놓는 걸 목격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다음 동작을 생각하는 게 더 어렵다고 호소하자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되는 대로 지르라고. 굉장히 힘든 두 시간이었는데 신기하게 개운했다. 일단 땀 흘리며 몸을 쓰니까 가벼워지는 것도 있었고 에라 모르겠다 심정이 되고 나니 동작을 생각하느라 힘들었던 것과는 별개로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다음 수업 때는 몸과 소리로 표현하는 다른 게임을 한다고 미리 생각해올 수 있도록 주제를 살짝 알려주셨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한 주를 보낼 듯.




Comments

  1. 수업이 한 시간 이상인 건가요? 망가지기 게임 이야기만 들어도 집에 가고 싶은 심정 알 것 같다ㅠㅠ 불편한 그 느낌이 팍팍 전해지는데 그래도 노력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내려놓기라는 게 쉽지 않은데 그래도 계속하다보면 조금씩 익숙해지기는 하겠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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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2시간 수업인데 선생님이 열정적이라 3시간까지도 넘어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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