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매니저가 휴가 갔다
내 매니저는 정말 일이 많다. 디렉터 레벨이라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각종 임원 회의에 들어가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쁜데 동시에 로컬리제이션 팀의 수장으로 사소한 일에까지 신경을 쓰곤 한다. 사람이 좋고 모두에게 잘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라 더 놓질 못한다.
이런 내 매니저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이는 지긋하지만 다른 사람의 칭찬에 약하고 자기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주지 않을 때 눈에 띄게 서운해 한다. 내 팀원들은 아무래도 여러 레벨 떨어져 있는 사람이고 자주 보지 않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지만 거의 매일 보는 나는 마음에 걸려 일대일 회의를 매니저 하소연을 듣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매니저를 힘들게 하는 문제를 해결해줄 능력은 안 되니 그냥 얘기라도 들어주는 걸로...
올해 들어 매니저가 휴가를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연초에는 원대한 목표를 가진 한 해를 시작하느라 바빴다. IPO를 앞두고 대규모 서비스 론치를 계획하고 있었고 올림픽 파트너로서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 중이었다. 2월 말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밤낮없이 일이 쏟아졌다. 국가별로 상황이 다르고 대응 방안이 다르다보니 나라별 호스트와 게스트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고 번역하느라 아수라장이 됐다. 코로나 상황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미리 대비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을 보내고 이제 좀 숨돌릴 수 있게 돼 제발 휴가 좀 가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캘리포니아 산불로 공기 질이 좋지 않아 어딜 나갈 수가 없다고 휴가를 계속 미뤘다. 그러는 사이 회사 매출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했고 다시 IPO를 준비하게 됐다. 어떤 이유로든 한가하긴 참 힘든 팀이다. 그래도 다행히 매니저가 아내와 캘리포니아 카멜에서 일주일을 쉬다 오겠다며 휴가를 냈다.
분명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재충전 되어 돌아오길... 매니저가 없어 줄어든 회의 덕분에 나도 한숨 돌리는 한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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