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상담 선생님
어제 오랜만에 상담을 갔다.
지금 선생님을 처음 만난 건 2017년 초. 2년 정도 꾸준히 받았고(출장 때문에 스케줄은 왔다갔다 했지만) 2018년 말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규칙적인 상담은 불가능했지만 여전히 관계는 이어졌다. 더블린과 런던에서 SOS를 보내면 구글 행아웃으로 화상 상담을 해주셔서 멀리 있지만 든든한 존재였다.
2020년 4월 코로나로 임시 귀국한 후 6개월 넘게 한국에 있었지만 대전에 계시는 선생님을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들어오자마자 이태원 집단 감염이 터져 조금 잠잠해지길 기다렸다가 약속을 잡았더니 광복절 집회로 다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그 뒤로 또 사태를 지켜보다 날을 잡은 게 12월이었는데 어쩌다보니 가장 코로나 상황이 안 좋을 때 뵙게 됐다. 그래도 선생님의 서울 일정이 취소되지 않아 서울에서 상담을 받았다.
런던으로 떠나기 전인 2019년 말에 뵌 게 마지막이니 1년 만에 선생님을 만나 너무너무 반가웠다. 한바탕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최근 고민과 감정 변화를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래 한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좋은 건 배경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을 모조리 이야기해서 이제 무슨 말을 하든 이어진다.
상담을 마치기 전, 선생님께 내가 만든 책을 드렸다. 아주 작고 얇은 책이지만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별 거 아닌데 선생님이 좋아해주시는 게 감사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하신 말씀에 찐감동을 느꼈다.
"혜림씨, 저 오늘 상담료 안 받을 거에요. 이 책으로 받은 걸로 할게요."
"네? 아니 그 책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사실 혜림씨가 자리에 앉을 때부터 오늘은 받지 말아야지 생각이 들었어요."
눈물이 났다. '돈 굳었다 아싸!' 이런 느낌이 아니라,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돈보다 더 귀중한 시간을 선물해주셔서. 이렇게 시간을 써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셔서.
동시에 혹시 이제 상담을 아예 종료하시려는 걸까 불안해서 "저 이제 상담 그만해주시려는 건 아니죠?" 라고 묻자, 오늘은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 떤 걸로 하자고...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내 첫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종료하고(앞으로 상담 받을 일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 내려진 후에야) 따로 만나 커피도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비즈니스 얘기도 하고 오히려 내가 그 분 고민을 들어줄 때도 있다.
지금 선생님과는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됐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이 필요하고 나에게 큰 힘이 되는 분이다. 곧 런던으로 돌아가면 또 한동안 뵙지 못하겠지만 존재만으로 든든한 선생님. 건강하게 지내라는 인사를 끝으로 나왔지만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강변북로 타고 오다 길 잃어서 한강 두 번 건너면서 좀 날아가긴 했지만😗)



저는 지금 상담 선생님하고 처음으로 장기(라고 해도 아직 1년이 안 된)로 상담중이라 최근에야 그 혜택을 체감하게 되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어지고 이해받는 것은 정말 큰 것 같아요. 심지어 영어 잘 안 되는 날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시던;
ReplyDelete책 선물 이야기 훈훈해요 :)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사람.. 너무 소중하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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