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목숨 건 커피

플랫화이트에 환장하는 나는 런던에 오기 전부터 숙소 근처 카페를 찾아봤다. 안 까다로운 게 없지만 유독 우유가 들어간 커피에 있어서 기준이 높다.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비율, 우유 거품의 정도.. 나에게 플랫화이트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기준 미달인 경우도 허다하다. 

막상 런던에 오고 나니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 게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입국한 후 공원 산책 한 번 외에(그것도 마스크 안 쓰고 조깅하는 사람들 때문에 찝찝해서 얼른 나왔다) 마트에 장보러 간 것밖에 없었고 사온 물건은 죄다 소독 스프레이를 뿌리거나 소독 물티슈로 닦은 후에 정리하면서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런데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 건 감염 경로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테이크아웃 종이컵에 바이러스가 묻어있었을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며칠 고민을 하다 평점이 높은 근처 카페 Hjem에 가서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고 문 앞에서 주문하면 직원이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통해 직원들이 마스크를 잘 쓰고 있는지 감시했다. 커피를 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알았다. 이 커피는 맛이 없을 거란 걸. 커피를 쥔 손가락 끝이 타는 듯하게 뜨거웠다. 자고로 라떼를 만들 때 우유는 너무 뜨겁게 데우는 게 아니다. 플랫화이트는 라떼보다도 우유를 덜 데운다. 집으로 들어와 뚜껑을 열어 보니 역시나 우유 상태가 노노다. 이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커피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대로 싱크대에 버렸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래 그냥 커피는 집에서 내려먹자.

그렇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다른 걸 보다 우연히 숙소 코앞에 진짜 괜찮아 보이는 카페(Guillam Coffee House)를 발견해버렸다. 리뷰와 인스타그램을 보니 대충 봐도 제대로 하는 집이다.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오늘 아침 결국 다녀왔다. 극찬이 쏟아졌던 피스타치오 크로와상도 함께 사왔다. 커피를 제대로 하는 집 답게 뚜껑을 주지 않았다. 라떼류에 뚜껑을 닫으면 커피가 뚜껑에 부딪히며 우유가 망가진다. 조심조심 숙소로 돌아와(100m도 안 되는 거리다) 종이컵을 소독 물티슈로 꼼꼼하게 닦았다. 마시는 내내 소독약 냄새가 났지만 맛있는 커피였다.

문제는 맛있게 잘 마신 다음이었다.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였다. 코로나 걸리면 어떡하지? 아무리 확률이 높지 않아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진 못했잖아. 소금물로 가글을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17차에 뜨거운 물을 타서 마셨다. 갑자기 열이 나는 것 같아 비타민C를 한 알 삼키고 홍삼 캡슐도 먹었다. 이미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갔다면 아무 소용없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 불안한 마음에 뭐라도 해야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못 살아. 난 커피 못 사먹겠다. 괜히 핸드로션을 발라 냄새가 나는지 맡아본다. 😣😭




Comments

  1. 저도 그래서 테이크아웃도 딜리버리도 잘 못 하겠더라고요. 매 끼니 내가 해먹는 것에 질려서 남이 해준 밥 먹고 싶은데 그러자니 또 꺼림직하고 별수 없이 계속 해먹는 수 밖에ㅠㅠ 우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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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음식 테이크아웃은 그래도 통 닦고 다른 그릇에 덜어먹고 있어요~ 어제 젤라또 배달시켜 먹었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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