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7. 어른의 일

돈에 관심이 없고 돈 관리에는 더더욱 무심하다. 월급이 들어왔는지 통장 확인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IPO 세금 영향인지 1월 월급이 평소보다 20% 정도 적게 들어와서 다들 문의하고 그랬다는데 나도 확인해봐야겠다 해놓고는 아직도 안 했네..) 온라인 뱅킹도 할 줄 몰라(아니 아예 내 통장이 뭐뭐 있는지도 몰라) 금융 거래는 모두 엄마를 통한다. 엄마가 내 은행이다. 

마흔이 다 되도록 금융 및 행정 업무를 엄마에게 맡기는 걸 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돈은 저 아래라는 이유로 정당화해오다 작년에 드디어 이게 부끄러운 일이란 걸 깨달았다. 금융 지식을 쌓겠다며 경제, 금융, 주식, 부동산 등에 관한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이모와 이모부가 집에 오신 날, 나름 자랑스럽게 이 변화를 얘기하자 이모부가 정곡을 찌르는 말을 하셨다. "혜림아 이건 금융 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야. 은행 업무 같은 걸 네가 가져와야지. 그게 어른의 일이야."

촌철살인이다. 이모부는 평소에도 옳은 말을 이해하기 쉽게, 받아들이기 쉽게, 굉장히 세련되게 말씀하시는 분이라 이모부와 대화하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내가 진짜로 해야 하는 건 금융 공부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성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행정 업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 주식 시작했어' 하면서 뭔가 대단한 발전을 한 것으로 착각한 거였다.

런던으로 돌아온 지금, 여전히 돈 관리는 엄마가 하고 있다. 내가 해외에 있다는 아주 편리한 이유로.

대신 해외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엄마의 도움을 받고 맡겼을 행정 업무를 직접 하고 있다. 집을 알아보는 것에서부터, 지방세 납부, 수도 전기 연결, 쓰레기 수거 요청 등등.. 

경제활동을 시작하면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그냥 돈 버는 아이인가보다. 영국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건 지도.


우리 집에서 운전은 술, 담배와 함께 곧 '아빠'를 뜻했다. (...) 아버지로 인한 불화가 적지 않게 벌어졌지만 기본적으로 아버지는 가장의 역할을 다할 때 행복을 느끼는 매우 가정적인 가장이었다. (...) 내추럴 본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는 다정다감과는 거리가 매우 멀지만, 가족을 위한 운전은 가장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자 역할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평생 이른 출근을 하신 적이 없는 데다, 원만한 생리 현상을 위한 아버지만의 빡빡하고도 확도한 오전 루틴을 갖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과제물이 많던 동생의 등교 시간에 맞춰 아침마다 운전대를 잡으셨고, 늦은 밤 좋아하는 술도 못 드시고 픽업 서비스를 나가셨다. 지금은 동생의 딸, 즉 손녀와 병원 나들이를 비롯한 이런저런 일정을 함께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다. (...) 운전은 내게 아버지의 역할, 즉 어른이 된다는 상징과도 같았다. 

--  <아무튼, 계속> '운전을 하지 않는다'


우리 아빠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많아 옮겨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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