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나의 플랫메이트

새 집으로 이사온 지 딱 2주가 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산 지도 2주.
대학 동기를 머나먼 런던에서, 코로나 시대에 만나 함께 살게 되다니.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중요한 introvert로서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누군가와 함께 집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생판 남이 아닌 친구와 함께 살게 된 건 너무 고마운 일이다.

2주간 지켜본 유진이는...

살림꾼이다
자체제작 깔때기로 쌀 페트병에 옮겨담는 유진 
뭐든 미루지 않고 후딱후딱 해치우면서 대충하지 않고 꼼꼼하다. 나도 깔끔하고 미루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새 보면 유진이가 이미 해버린 상태다. 특히 초반에 필요한 게 많아 끊임없이 택배가 왔는데(락다운 기간이라 온라인 쇼핑 외에 대안이 없다) 바로바로 내려가서 가져와 언패킹+소독+쓰레기 정리를 한다. 

화장실 환풍기가 돌아가는지 안 돌아가는지 스위치를 껐다 켜도 알 수가 없었는데 의자를 갖고 밟고 올라가더니 화장실 휴지 한 칸을 환풍기에 갖다 댄다. 환풍기가 켜져 있으면 휴지가 달라붙는다고. 천잰데? 

방문 두 개가 여닫을 때 끼익끼익 꽤나 큰 소리를 내는데 기름칠을 해야 하나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유진이가 문 경첩에 핸드크림을 바르며, 자기도 처음 해보지만 이렇게 하면 소리가 덜 나지 않을까 라고... 

음식하는 것도 좋아하는지 이미 된장찌개와 고추장 불고기를 얻어먹었고, 설날에는 떡국과 인절미를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워낙 부지런하다보니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바로 쫓아와서 도와주려고 하는 게 가끔 귀찮을 정도라는 거? 😂


무던하다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하는, 내가 부러워 하는, 까다롭지 않고 성격 좋은 사람이다. 

처음부터 나보고 방을 고르라고 하더니(그래서 난 방은 조금 작지만 욕실에 욕조가 있는 방을 택했다) 내가 매트리스가 너무 푹신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하자 매트리스도 바꿔줬다. 유진이도 그 매트리스를 쓰면 허리가 아플 것 같아 하루 자보고 별로면 매트리스 토퍼(mattress topper)를 사자고 했는데, 다음날 아침 "네가 왜 허리가 아프다고 하는지 알겠다"면서도 자긴 괜찮다고. 난 매트리스를 바꾼 뒤로 정말 편하게 잘 자고 있다.

본인이 무던하니까 가끔 문을 닫지 않고 영상통화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건 내가 워낙 소리에 민감한 탓.. 조금이라도 시끄러울 것 같으면 문을 닫고 하는 습관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꿈에 그리던 런던살이를 코로나와 함께 하게 되어 '나한테 왜 이래' 싶은 억울함이 있지만, 덕분에 이렇게 친구와 함께 살아보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나에게서 런던살이를 빼앗아간 대신 이렇게 백점짜리 플랫메이트를 선물했나. 유진이에 비하면 나는 한참 모자란, 까다로운 동거인이겠지만. 😂

Comments

  1. 잘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아 다행이네요. 요리하는 룸메 완전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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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흐흐 오늘은 인절미 만들어 먹었어요! 집에서 떡을 해먹다니..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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