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우산만 말고 마음도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중

       


일기예보는 자주 빗나간다. 그렇더라도 비 예보가 뜨면 우산을 챙겨 들고 나간다. 맑은 날이건 흐린 날이건 외출할 때 꼭 챙겨야 하는 우산이 있다. 바로 자존이다. 사람들은 이 호신용 마음을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이 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긍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존심은 경쟁 관계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고,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존감은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방패다. 언제 어디에서 매복한 적군의 화살이 날아올지 모른다. 내 방어력이 최고치일 때 화살은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문제는 내 자존감이 바닥났을 때다. 화살촉에 묻은 모욕감이라는 독은 내 몸 안에서 죄책감으로 퍼진다. 화살을 쏜 적병의 책임이 아니라 피하지 못한 나의 책임이 된다. 자기비하는 스스로를 열패감에 빠뜨린다. 감각 마비처럼 정서 마비가 일어나고 삶은 빠르게 자기 연민 모드를 작동시키고 모든 의욕을 놓아버린다.

공공의 적들은 집요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존에 상처를 입히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러므로 자존감은 늘 충전돼 있어야 한다. 자존감은 나를 방어하는 데에도 쓰이지만, 선량한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데에도 사용된다. 우산이 대신 비를 맞아주고 양산이 따가운 햇살을 대신 맞아주는 것처럼.

운전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한다. 멀쩡하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야수로 돌변하는가 하면, 험한 말 한 마디도 못할 것 같던 사람이 욕의 향연을 펼치기도 한다. 작은 차가 내 차를 추월했다는 이유로,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불쑥 내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서툴고 느리게 운전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것이 운전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자신을 보호할 호신용품을 깜박 집에다 두고 나왔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한다. 자기도 모르게 과속 페달을 밟고, 자기도 모르게 분노 게이지를 높이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인 것이다. 자존감은 나를 지키는 무기지만, 타인을 지켜주는 에티켓이기도 하다.

나는 외출하기 전에 꼭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사는 한 미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이 내게 해주는 응원의 말을 듣기 위해서다.

"나는 나다운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인증한다!” 

외출할 때 자기 확신과 자기 긍정을 가득 충전하고 나가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의 시간이 와도 늑대나 청개구리로 변하지 않는다. 종일 인간을 유지할 수 있다. 너그러운 본성과 나에 대한 자신감,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장착한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

그러면 훨씬 여유가 생기고 사태의 이유가 보인다. 불쑥 내 앞으로 끼어든 차는 서툰 초보운전자 철수 씨이고, 앞서 추월해 가는 차는 화장실이 급한 영희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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