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도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중
아이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기도의 내용은 뻔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무슨무슨 선물을 받게 해달라는 청탁이었다. 나는 아이가 교회에서 돌아오 면 슬쩍 물어봤다.
"하느님께 뭐라고 빌었어?"
나에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했다. 아이가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 알아야 내가 선물을 준비하는 데 고민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 선물을 머리맡에 갖다 놓으면 그해 나의 산타 할아버지 역할은 망치게 되 고, 두고두고 아이의 원성을 사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조가 순조롭지 않았다. 아이는 얄밉게도 청 탁의 내용을 함구했다.
'내가 아빠한테 말하면 산타 할아버지가 소원을 안 들 어주실지도 몰라. 하느님과 나만의 비밀이야."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 비밀을 알아내려면 내가 교회에 가서 하느님 아버지께 간곡히 빌어보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고심 끝에 꾀를 하나 냈다.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한테 원하는 선물을 받는 방법을 알려줄까?"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밝아졌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눈을 감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하느님이 누구 기도 인지 잘 알아듣기 힘들겠지. 꼭 들어달라고 기도할 게 있을 때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하느님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좋아. 목사님들 봐. 기도할 때 소리를 크게 내서 하시잖아. 한 소리 또 하시고 그러시잖아. 언제 기도가 끝나나 하느님이 기다리니까 맨 마지막엔 아멘, 하고 끝났다고 알려주는 거고, 너도 오늘 밤에 잠자기 전에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소리 내서 기도를 해봐. 이에 가 가르쳐준 대로 꼭."
나는 그날 밤 내가 원하는 걸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철학자 헤겔이 우리에게 중요한 말을 남겼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
마음의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남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사이가 가까워지고 친밀해질수록 자신이 원하는 걸 함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이 정도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 줄 거라고 착각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어야 하는 게 사랑이라고 오해한다. 현명해서 마음을 다 읽어내 고 알아챘으면 좋으련만, 잘 읽어내질 못해서 좋았던 사이가 틀어진다. 보통 사람들이 갖기 어려운 독심술을 요 구해놓고 성의가 없어서 그렇다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불화의 책임을 떠넘 긴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소리 내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역사 상 고백하지 않고 이루어진 사랑은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표현되지 않은 마음은 무효다. 하다못해 문자가 없는 시대에도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렸다. 마음을 전하려고 예술이 생겨났다. 말하지 않고 아직도 바라기만 하는 것들은 죄다 잡혀가야 한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