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묘비명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중
'죽음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유언장을 작성하고 묘비에 새길 묘비명도 한 줄 썼다. 검은 리본이 둘러진 영정사진 액자를 들고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내 몸이 누일 관까지 걸어갔다. 거의 매일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던 그 남자가 영정사진 속에서 웃음 짓고 있었다. 천천히 수의를 입었다. 까슬한 값싼 천으로 지은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부유했든 가난했든 아무것도 담아가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벗어 한쪽 편에 가지런히 모아둘 때 기분이 묘했다. 그 짧은 순간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마지막 의례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형용할 수 없는 사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관 속에 발을 들여놓는 내 모습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리게 보였다. 다시는 걷지 못할 마지막 걸음이라고 생각하니 더 많이 걷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 속으로 들어가 등을 대고 누웠다. 어깨가 닿을 만큼 비좁고 서늘했다.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지상의 마지막 너 비. 겨우 이만큼일 걸, 이만큼이면 충분했던 걸 나는 너무 많이 원하며 살았다. 양손을 가슴에 얹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관에서 나무 냄새가 났다. 세상에 와서 내가 좋아했던 냄새들이 떠올랐다. 엄마 냄새, 햇볕 냄새, 풀 냄새, 눈 냄새, 비 냄새, 설탕 냄새… 내가 마셨던 공기와 물과 냄새들에 작별을 고했다. 관 뚜껑이 덮이자 빛이 사라졌다. 눈의 감각이 닫혔다. 뚜껑 위로 나무못 박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지상에 와서 듣는 마지막 소리였다. 네가 세상에 와서 타인의 가슴에 박은 못이 얼마나 많은 지 떠올려보라는 듯이 천둥처럼 울렸다. 그렇게 나는 죽어서 칠흑같이 어둡고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의대생들이 해부학 실습을 하기 위해 처음 사체를 마주할 때 가장 많이 갖게 되는 느낌이 '차가움' 이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따뜻하다는 것이 곧 살아 있음의 증거인 셈이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서를 쓸 때 왜 그리 많은 관계들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산다는 건 무수한 관계를 얽어 나라는 한 채의 집을 짓는 일이다. 죽는다는 건 그 모든 관계를 허물어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묘비명을 무어라고 써야 할지 난감했다. '세상에 와서 좋았다'고 쓰기에는 내가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쓰기에는 내가 너무 잘못 살다 가는 느낌이 들었다. 망설이다가 나는 '잘 먹고 갑니다' 라고 썼다. 세상이 내게 차려준 밥은 따뜻했고, 그 안에 사랑이 담겨 있었고, 다 헤아릴 수 없는 정성과 수고가 깃들어 있었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나는 살았고, 밥은 언제나 나의 정직을 요구했다. 그런대로 나는 나의 밥값을 치렀다.
"잘 먹고 갑니다" 묘비명 너무 좋다. 이것보다 좋은 걸 생각 못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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